산천초목의 통곡
명창 박달현
Pansori
About
이 곡은 깊은 산골 선비의 고뇌를 담은 판소리로, 북채의 강렬한 타격과 소리꾼의 극적인 바이브레이션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아니리와 소리가 교차하며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전통적인 한국의 미학으로 풀어냈습니다.
Lyrics
어이, 북채를 들어라. 둥, 둥, 둥.한바탕 풀어내어 맺힌 마음 씻어내고,천지신명께 고하노니 이 소리 들어보소.
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이름 없는 선비 하나 살았는데, 글공부 십 년에 남은 건 닳아빠진 붓대와 텅 빈 쌀독뿐이라. 어느 봄날,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마음 뒤숭숭한데, 지나가는 나그네 붙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한 번 들어보자 작정했것다. 그때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으니, 이것이 운명인가, 아니면 한낱 헛된 꿈인가.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첩첩산중 저 너머로 구름이 간다꽃잎은 지고 잎사귀 돋는데내 청춘은 어디로 흘러가는가천 리 길 마다않고 님을 찾으러신발 굽 다 닳도록 걸어왔건만뒤를 돌아보니 그림자 하나외로운 달빛만 길동무하네
선비가 산을 내려와 저잣거리에 닿으니, 사람들은 저마다 제 살길 찾느라 바쁘고 누구 하나 남의 슬픔 돌아볼 겨를이 없구나. 돈 있는 놈은 떵떵거리고, 배고픈 백성은 길가에 쓰러져 곡소리 내니, 이것이 과연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아니면 귀신들이 노니는 마당인가. 선비는 붓을 꺾고 삿갓을 눌러쓰며 하늘을 향해 크게 한 번 외치더라.
어허 둥둥 내 팔자야구름 따라 흘러가는 저 물길 같고바람 따라 흩어지는 낙엽 같구나불의를 보고도 눈 감아야 하는가배고픔에 지쳐서 고개 숙여야 하는가천지는 넓고 갈 곳은 많은데내 한 몸 누일 곳은 어디메인가가슴 속 맺힌 응어리 터져 나오니산천초목도 함께 울어주누나
아이고 데이고 어허야 좋구나울음 끝에 웃음 나고 웃음 끝에 눈물 나네세상 이치가 돌고 도는 수레바퀴라오늘의 고생이 내일의 꽃이 될까비바람 몰아쳐도 꺾이지 마라눈보라 휘날려도 쓰러지지 마라내 소리 끝나는 곳에 희망이 있고내 북소리 멈추는 곳에 진실이 있네
그리하여 선비는 다시 길을 떠나니, 누가 알아주든 말든 제 갈 길을 걷는 것이 곧 사람의 도리라. 오늘 이 소리는 비록 거칠고 투박하나, 듣는 이의 가슴 속에 작은 씨앗 하나 심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라. 북채를 멈추니 적막이 흐르고, 다시금 세상은 제 갈 길을 가는구나.
둥, 둥, 마지막 울림이여.바람은 다시 불고 길은 또 이어지니,고이 접어두자, 이 한바탕의 꿈을.얼씨구, 좋다.
산천초목의 통곡
명창 박달현
P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