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낚는 나그네의 노래
무명 나그네
판소리
About
북채가 공기를 가르는 듯한 강렬한 고수의 북소리와 소리꾼의 애절하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서사적인 아니리와 드라마틱한 비브라토가 어우러져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의 의지를 한국 전통의 미학으로 담아냈습니다.
Lyrics
어허, 얼씨구. 북채 끝에 실린 달빛이 오늘 밤도 허공을 가르는구나.이보게 고수, 둥둥 북소리 내 마음의 맺힌 매듭처럼 한 번만 더 깊게 쳐주게나.
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이름 없는 나그네 하나가 살았더란다. 가진 것이라곤 낡은 짚신 한 켤레와 바람에 흩어지는 이름 석 자뿐이었지. 어느 날, 길을 가다 보니 커다란 고목 아래 눈물 짓는 여인이 앉아 있거든. 사연인즉슨,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해 사랑하는 이를 저 먼 강 건너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라. 나그네가 혀를 차며 말하길, "운명이라 함은 쇠사슬이 아니라, 제 발로 밟고 가는 흙길과 같은 것이거늘, 어찌하여 스스로 굴레를 쓰려 하느냐."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바람은 굽이굽이 산을 넘는데 떠나는 님의 뒷모습은 지는 해에 머물러 울고 있구나.하늘이 정한 인연이라 끊어내기엔 너무도 아프고땅이 맺은 악연이라 잊으려 해도 가슴에 박히네.아이고, 이 내 팔자야.물길 따라 흘러가면 어디가 끝이냐.구름 따라 떠돌다가 어디에 눕느냐.
님아, 님아, 나의 님아.가지 마라, 가지를 마라.강 건너 저승 꽃 피는 곳에 무엇을 보러 홀로 가느냐.내 가슴에 맺힌 눈물 강물 되어 띄워 보낼 테니 그 물길 타고 다시 돌아오라.둥둥 북소리 내 가슴 치고 뚝뚝 눈물은 흙바닥 적시는데 오지 않는 님은 소식이 없구나.
나그네는 그 길로 주저앉아 밤새도록 노래를 불렀다지. 지나가는 새도 울고, 지나가는 구름도 멈춰 섰다더라.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이지. 새벽닭이 울 때쯤, 강 건너편에서 돛단배 하나가 슥 나타나더란 말이야. 그 배 위에는 떠났던 이가 멍하니 앉아 있거든. 운명이라는 놈이 나그네의 노래에 감동했는지, 아니면 그저 변덕을 부린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분명한 건 그들이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지.
운명은 정해진 길인가, 아니면 내가 닦는 길인가!천둥소리 하늘을 울리고 벼락치듯 깨달음이 뇌리를 스치니내 목소리 산천을 뒤흔들고 내 한숨이 구름을 걷어내는구나!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다!운명이 나를 비웃어도 나는 노래로 운명을 비웃으리라!높이 솟구치는 이 소리가 저 강물을 거슬러 오르리니!
꽃잎은 지고 다시 피어나고 달빛은 차고 다시 기울어도 우리네 삶은 굽이치며 끝끝내 멈추지 않고 달려가네.슬픔은 기쁨의 그림자요 기쁨은 슬픔의 열매이니 오늘 이 한 판, 시원하게 쏟아내고 내일은 다시 길을 떠나련다.
북소리 잦아드니 달빛마저 발걸음을 멈추네.나그네는 다시 짚신을 고쳐 신고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니 남은 것은 오직 허공에 맴도는 긴 여운뿐이로구나.얼씨구, 잘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끝이 났느니라.
운명을 낚는 나그네의 노래
무명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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